광고
광고
광고
광고

[문화 탐방-동작구의 이색 문화재를 찾아서]

등록문화재 제 250호 한강철도교 그리고 한강대교

김국제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10/06/30 [18:48]
▲     흐린 오후의 한강철도교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 다니며 보게 되는 한강철도교가 문화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연결하는 철도교는 한강에 건립된 최초의 근대 교량이자 등록문화재 제 250호로 당당하게 등록되어 있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다.

▲     초기의 한강 철교 모습
한강 철교는 1896년 3월 29일 경인철도 부설권이 미국인 모스에 의하여 취득된 뒤, 1900년 7월 5일 준공되기까지 총 4년여에 걸쳐 진행된 대공사였다.
 
당시 경인철도합자회사에서는 “노량철교는 미국이 제작한 최신 공법이요, 천하에 드문 것 이고, 마치 길이 3,000척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 같다.” 라고 선전한 바 있다. 


이후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어 수송량이 증가하자 기존 설비의 개량과 함께 한강철교의 복선화가 필요하게 되어, 1912년에 제2철도교가, 1944년에 제3철도교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 한강철교는 6•25 동란 때 한강인도교와 함께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전략상 목적으로 1950년 6월 28일 오전 2시 30분에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했다.

▲   폭파된 한강 철교

이후 1966년 2월에 한 강 복구사업의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대일 청구권자금 제1차 차관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철교 A, B선의 복구와 경인선 복구건설을 1967년 8월 28일에 착공하여 폭파된지 19년만인 1969년 6월 28일에 완전 복구하여 현재의 한강철교로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는 전철의 수요증대로 A선과C선 사이에 한 선을 더 추가 착공하여 1993년에 완공하였다.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 [한강대교]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연하는 다리로 너비 36.8m, 길이 1,005m이고, 중간에 중지도(中之島)가 있는 한강 최초의 교량으로. 한강 인도교 또는 제1한강교 등으로 불리우다가 1981년 한강대교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    1981년 당시의 한강대교 모습
한강대교의 인도교 가설이 착수된 것은 1916년 4월이었고, 교각 기초공사를 시작한 한달 후인 5월 27일에는 기공식을 가졌다. 그 후 19개월의 공사로 1917년 10월에 준공을 했다. 이 때 건설된 다리는 폭이 7.7m 중앙차도가 4.5m, 좌우 보도가 각각 1.6m이고 육지와 연결되는 부분은 제방을 쌓았으며 실제 교량의 거리는 629 m였다. 1917년 한강인도교 공사당시 총비용은 당시 돈으로 총 83만원이 소요 되었다고 한다. 


서울 도심에서 남쪽 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한강대교는 야간 장식전등까지 갖춰 당시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는데 이곳을 왕래하며 산책하는 인파가 넘치면서 투신 자살 자가 늘어나자 그 방지책으로 일촌대기(一寸待己) “잠깐 기다리자”라는 팻말까지 세워야 할 정도였다.

한강대교역시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처음의 한강인도교는 좁고 약해서 홍수에 유실되었고, 그 후에도 1930년과 1938년의 두 차례에 걸쳐 공사가 있었으며, 6·2 5전쟁 때 북한의 남하를 막고자 작전상 폭파되었었다.


▲     한강대교와 멀리 보이는 한강 철교
한강철교와 한강대교의 폭파로 수백명의 시민이 죽었고 피난을 가지 못한 서울 시민이 80%나 되었었다.6.25때 파괴된 한강대교는 1958년에 복구됐으며 1981년 12월에는 원래의 기존의 인도교 옆에 같은 형태 같은 규모의 다리가 놓여 쌍둥이 다리로 확장을 하면서 한강대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한강대교는 건걸부 국도 1호선의 한강 횡단교량으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기업신문
광고
 
한강철교.한강대교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