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인철도합자회사에서는 “노량철교는 미국이 제작한 최신 공법이요, 천하에 드문 것 이고, 마치 길이 3,000척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 같다.” 라고 선전한 바 있다. 이후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어 수송량이 증가하자 기존 설비의 개량과 함께 한강철교의 복선화가 필요하게 되어, 1912년에 제2철도교가, 1944년에 제3철도교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 한강철교는 6•25 동란 때 한강인도교와 함께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전략상 목적으로
이후 1966년 2월에 한 강 복구사업의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대일 청구권자금 제1차 차관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철교 A, B선의 복구와 경인선 복구건설을 현재는 전철의 수요증대로 A선과C선 사이에 한 선을 더 추가 착공하여 1993년에 완공하였다.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 [한강대교]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연하는 다리로 너비 36.8m, 길이 1,005m이고, 중간에 중지도(中之島)가 있는 한강 최초의 교량으로. 한강 인도교 또는 제1한강교 등으로 불리우다가 1981년 한강대교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서울 도심에서 남쪽 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한강대교는 야간 장식전등까지 갖춰 당시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는데 이곳을 왕래하며 산책하는 인파가 넘치면서 투신 자살 자가 늘어나자 그 방지책으로 일촌대기(一寸待己) “잠깐 기다리자”라는 팻말까지 세워야 할 정도였다. 한강대교역시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처음의 한강인도교는 좁고 약해서 홍수에 유실되었고, 그 후에도 1930년과 1938년의 두 차례에 걸쳐 공사가 있었으며, 6·2 5전쟁 때 북한의 남하를 막고자 작전상 폭파되었었다.
한강대교는 건걸부 국도 1호선의 한강 횡단교량으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기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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