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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동작동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라진 지명.

동작투데이 편집국 | 기사입력 2010/07/04 [08:47]
동작동 (銅雀洞)
동작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에 이곳이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도진(渡津)의 하나였던 동작진(銅雀津)을
동재기나루터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동재기
흑석동에서 현재 국립 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구리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나루터는 조선시대 과천.수원.평택을 거쳐 영.호남으로 내려가거나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이다.

◎ 정금마을
현재 경문고등학교 옆에 있는 이 마을은 옛날 정(丁)씨 성을 가진 감사(監司)가 살던 마을이라 하여 정감몰 또는 정가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조선후기 이곳에 포방터(사격장)가 있어 여기서 훈련을 마친 뒤 나루를 건너기 전에 인원과 장비를 점검하였다고 하여 점검마을이라 한 것이 정금마을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또 서울에서 나루를 건너 호남으로 여행하던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주막이 위치한 산모퉁이 동네라 하여 정거머리 동네라고도 불리어졌다고 하는데, 현재 동작동 56.59.61.64번지 일대이다.

배나무골
동작동 41.42.66.71번지 일대의 이 마을에는 광복 전까지 만 해도 아름드리 배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 마을 근처에 이수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갯마을
동작동 80~106번지 일대의 마을로 포촌(浦村)이라 불렀는데 이 일대가 갯벌인 데서 연유한 지명이다.

◎ 농배 (능배)
현 동작터널과 국립묘지 군악대가 있는 지역에 있던 마을로 약 15가구가 나루터에서 고기잡이와 잡역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


◎ 국립서울현충원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이다.이 곳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孔雀峰)을 주봉(主峰)으로 하여 정기어린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수가 굽이쳐 도는 풍수상 명당으로 손꼽히는 43만여평의 포근한 땅이다.

국군창설 이래 전사자들을 서울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장충사에서 모셔왔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여 전사자 수가 증가하자 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어 1955년 7월 15일 현재 위치하고 있는 동작동에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를 창설하
였다. 1956년 4월 13일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전국 곳곳에 이름없는 넋으로 산재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초기 국군묘지에는 군인과 군무원만을 안장하였으나,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을 확대하여 안장함으로써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96년 6월 1일에는 '국립묘지관리소'의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되었고, 2006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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