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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 이중언 선생 선정

동작투데이 편집국 | 기사입력 2010/08/02 [01:06]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일제 침략을 경고하고 단식 순절한 이중언(李中彦)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  이중언 선생 영정                                         천안독립박물관
1850년 2월 12일 안동시 도산면 하계리에서 대 성리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1대손으로 출생한 이중언 선생은 1879년 5월 대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가 1892년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봉화군 임당산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1895년 음력 8월 명성황후 시해 및 단발령으로 의병활동이 본격화되자 선생은 이중린 대장 휘하의 전방장이 되어 항일투쟁 선봉에 섰다.

선생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당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다섯 도적의 목을 베소서’란 상소문을 지어 을사늑약에 가담한 이완용 등 5명을 처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왜적 치하에서는 살려고 음식 먹는 일은 결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9월 8일 단식을 결심하였다. 
 
이어 이튿날 9월 9일 동은 이중언 선생은 일제에게 보내는 '경고문(警告文)' 을 쓰면서 "한치 흔들림 없이 빼앗긴 내 나라 위해 오직 이 한 목숨 던지노라"고 서릿발 같은 뜻을 밝혔다. 이어서 일제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굽히지 않고 맞서다가 순절 직전 '술회사(述懷詞)'를 읊으며 빼앗긴 나라를 탄식했다. 10월 4일 단식 27일 째, 동은 이중언 선생은 순국하였다.

선생은 단식 27일 만에 순절했지만 죽음을 통해 국권피탈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고 이 같은 절의는 민족적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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